사색하는 ‘피아노 거장’ 알프레트 브렌델 별세
사색하는 ‘피아노 거장’ 알프레트 브렌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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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알프레트 브렌델 [연합/AFP]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오스트리아의 ‘피아노 거장’ 알프레트 브렌델이 별세했다. 향년 94세.
17일(현지시간) 문화예술 전문 홍보대행사 볼턴앤드퀸에 따르면 알프레트 브렌델은 영국 런던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홍보대행사 측은 AFP를 통해 브렌델은 이날 “평온하게, 사랑하는 이들에게 둘러싸여 떠났다”고 했다.
고인은1931년 체코슬로바키아 비즘베르크(현 체코 로우치나나트데스노우)에서 태어나 유고슬라비아 자그레브(현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와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0대 시절 그라츠 음악원에 몇 년간 다녔으나 브렌델이 정식으로 스승을 둔좌자연체
것은 16세가 마지막이었다.
브렌델은 은퇴 후인 2012년 베르비에 페스티벌 인터뷰에서 자신이 음악이나 예술이나 지성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집안 배경에서 성장했다며 “많은 것을 혼자서 찾아내야 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브렌델은 17세 때 그라츠에서 바흐, 브람스, 리스트의 푸가 작품들로 독주회를 열어 피아니스트로 데뷔직장인 햇살론
, 이듬해인 1949년 페루초 부조니 피아노 콩쿠르에서 4위로 입상하면서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꾸준히 음반과 공연을 통해 관객과 만나며 브렌델은 1970년대부터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피아니스트들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데뷔 초엔 화려한 기교를 자랑하는 ‘리스트 스페셜리스트’로 이름을 알려 슈베르트, 베토벤, 모차르트, 하이건축공사 원가계산
든 등의 연주에 있어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피아니스트다. 정교한 음색과 깊은 사색이 담긴 지성적인 연주로 그는 ‘사색하는 피아니스트의 남자’(the Thinking Pianist‘s Man)로 불리기도 했다. 1960년대엔 세계 피아니스트 최초로 미국의 레코드 레이블 복스(Vox)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독주곡 전곡을 녹음했다. 이후1970년대·1990년대에한국장학재단 생활비대출 한도
필립스(현 데카 클래식스)에서 총 3차례 피아노 독주곡 음반을 냈고, 협주곡 전집은 1960년대 복스, 1970년대·1980년대·1990년대 필립스 등 총 4차례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브렌델은) 우리를 작곡가의 심장과 영혼으로 데려가는 대신 소나타를 엑스레이로 해부하듯 보여줘 존경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할부회선초과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과 조성진 [조성진 페이스북]
고별공연은 2008년 12월 빈필하모닉과의 협연을 끝으로 은퇴, 강연과 독서, 세미나, 집필 등으로 말년을 보냈다.
생전엔 베를린 필하모닉의 한스 폰뷜로 메달사업자대출조건은행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음악상, 에른스트 폰 지멘스 상 등을 수상했으며, 케임브리지, 옥스퍼드, 예일대, 줄리어드 등 수십개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2015년 그라모폰과의 인터뷰에서 “저는 음악을 통해 많은 즐거움을 누렸다. 전 고통받는 예술가 타입이 아니었다”며 “비록 습관적 비관주의자이지만 기분 좋은 놀라움을 즐길 줄 주거래은행
안다. 세상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알고 있지만, 그 사실에 빠져들어 우울해지기 보다는 그 터니없음이 웃기다고 생각하려 한다”고 말했다.
거장 음악가의 별세에 음악계에서도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브렌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마에스트로 알프레드 브렌델, 편히 쉬세요”라며 “당신의 제가 지금 이 모습의 피아니스트가 되국민주택기금대출이란
는 데에 지대한 영향이 줬다. 당신의 음악과 영감에 감사하다”는 글을 올렸다.